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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장공(忠壯公) 남이흥(南以興) 장군의 위패를 봉안하고 있는 충장사(忠壯祠)의 좌측(左側) 뒤편에 남이흥 장군의 묘와 그의 아버지 남유장군(南瑜將軍), 그의 부실(副室)인 연안김씨의 묘가 자리하고 있다.
충장사 아래에는 인조 14년(1636)에 세운 남유, 남이흥 부자(父子)의 정려(旌閭)인 「남씨양세충신정려(南氏兩世忠臣旌閭)」가 있다.
남이흥 장군의 묘는 호석(護石)을 둘렀으며, 묘의 앞과 옆에는 비석(碑石), 망주석(望柱石), 문인석(文人石), 석등(石橙)이 세워져 있다. 장군의 비석은 귀갑문(龜甲文)과 안상(眼象)이 조각(彫刻)되어 있는 장방형(長方형形)의 대좌(臺座) 위에 화강암의 비신(碑身)을 세우고 운용문(雲龍文)이 새겨진 화려한 이수(?首)를 얹고 있으며, 이에 비해 아버지 남유장군의 비석은 특별한 조각이 없는 간결한 형태로 만들어져 있다. 장군의 묘소는 원래 경기도 광주군 중부면 탄리에 있던 것을 1971년 성남단지 조성으로 인해 이곳으로 이장하였다.
남이흥 장군은 조선 선조 9년(1572)에 태어난 조선시대 무장으로 자(字)는 자는 사호(士豪), 호는 성은(城隱), 시호는 충장(忠壯)이다. 무과에 급제하여 선전관(宣田官). 충청 ? 경상병사를 역임하였으며, 이괄(李适)의 난을 평정한 공으로 연안부사(延安府使)에 올랐으며, 의춘군(宜春君)에 봉해졌다. 인조 5년(1627) 정묘호란(丁卯胡亂) 때, 평안병사(平安兵使)로 안주군을 좌의정(左議政)으로 증직(贈職)하고 의춘부원군(宜春府院君)으로 봉하였다 한다.
남유 장군은 남이흥 장군의 부친으로 임진왜란 당시 나주목사(羅州牧使)로 이순신 장군과 함께 노량해전(露梁海戰)에서 전사한 분으로 사후에 좌의정(左議政)에 추증(追贈)되었다.
1968년에 충장사를 보수하고, 1979년에는 장군의 유물 500여점이 보관 전시되어 있는 모충관(慕忠館)을 건립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