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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게 문집에서 이요당 문헌 찾았습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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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리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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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12-2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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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9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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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당에서 퇴계 이황 선생님과 함께 왕세자를 가르쳤던
이요당 남응룡 문헌이 퇴게문집에서 나왔기에 안내 드립니다.
퇴계문집에서 새로 발견된 이요당 남응룡 한시번역 중 내용 원문 소개드립니다.
충장사입구 3 신도비 중 하나인 이요당 남응룡 은 남이흥장군의 조부입니다.
충남대학에서 대호지면 도이리 종숙에서 도호의숙으로 연결된 문헌 을 정립하고 게시는 충남 대학 김상기 교수님에 의하여 발견된 문헌입니다..
원문 소개드립니다.
1) 남응룡은 1547년(명종2년) 13년 연상인 퇴계 이황(1501-1570)과 호당에서 함께 학문에 정진하였다. 그가 죽자 퇴계는 제문을 써 그의 죽음을 애도하였으니 퇴계와의 교분을 짐작할 수 있다. 퇴계문집에 의하면 퇴계가 남응룡에게 준 다음과 같은 시가 있다.
次韻景霖 南應龍 見贈
靜夜燒香丈室空。
鼻中惟覺寂然通。
他時尙昧先王典。
此日猶聞長者風。
蛇嚙樹根從井底。
地逢雷響在泉中。
離羣可怕成孤陋。
齒髮年來漸不同。
(退溪先生文集別集 卷一 詩)
2) 남응룡은 이황의 형인 이해(李瀣, 1496(연산군 2)∼1550(명종 5))와도 교유가 있었으니, 남응룡이 온계(溫溪) 이해에게 보낸 시가 전한다. 이해는 이황의 형으로 자는 경명(景明)이고 온계(溫溪)는 그의 호이다. 정민(貞敏)이란 시호를 받았다. 이 시는 이해가 황해도관찰사였을 때 보낸 것이다. 이해가 1547년 황해도 관찰사에 부임하여 1549년 청홍도 관찰사로 옮겨간 것으로 보아 1547부터 1549년 사이에 쓴 것으로 보인다. 시는 다음과 같다.
贈黃海觀察相公硏右 南樂山 應龍
淸時公望斗南賢。
文采從來玉署仙。
捧日久依天北極。
觀風乍出海西邊。
威明自是民無訟。
勸課還應歲有年。
政到澄淸秋又至。
水仙樓閣詠風漣。
卜宅終南盡處村。
憶騎羸馬過朱門。
滿庭松翠簾櫳靜。
一座春風笑語溫。
別後不知山水隔。
思時長覺夢魂煩。
詩成寄與紅蓮客。
開卷秋囱幸弗諼。
平生師友退溪翁。
款段還鄕只固窮。
不耐長時懷雅量。
幾從大似挹淸風。
西巡駟牡秋風裏。
南望松筠暮雨中。
幸得割鷄閭井近。
急修書札付來鴻。
(景浩得宰安東。近必爲謝恩來京。故云)。
--------------------------- 溫溪先生逸稿 卷三 附錄 海西贈遺
3) 정재학이 기축년(1949) 3월에 죽자 한운석은 그를 위해 아래와 같은 만사를 지은 것이 확인된다 方齋文集권3, 輓詞).
嗟君博學早無方
書帶旋凋一夜霜
柿葉題詩無復覩
鷓鴣鳴咽不平嗚
斯文喪矣家鄕遠
極樂安之道路長
居此壽堂非壽域
神仙共伴上瑤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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