곤룡포 답호

보문단 겹답호
16세기 말 ~ 17세기 초
길이 122㎝ 화장 19㎝ 품 41.8㎝
인조 임금이 입으셨던 곤룡포

자세히보기

정묘호란 안주성에서 남이흥 장군 순국 소식을 듣고 인조 임금은 국장으로 장례를 치르라 명하고 인조 임금이 직접 장례에 참여하여 눈물을 흘리며 애도 하며 인조(仁祖)가 입었던 곤룡포를 벗어 장군의 관(棺)위에 덮어 준 것이라고 전한다. 원래 형태를 알아 볼 수 없을 만큼 훼손되었던 것을 보수 바탕 천을 덧대어 형태를 잡아 보존처리한 상태이다. 지정당시에는 ‘대례복’이라고 명명하였으나, 1991년에 ‘답호’로 문화재명칭을 변경하였다.

옷의 형태는 소매와 섶이 없는 대금형 맞깃이고 양옆과 뒤 모두 트임이 없으며 길의 좌우에는 커다란 사다리꼴 무가 달리고 옆선 끝 겨다랑이 아래에는 삼각형의 무를 대었다. 안감은 이미 소실되었지만 깃 아래와 도련 끝에 갈색의 명주로 만든 안감이 일부 남아 있는 것으로 미루어 겹옷임을 알 수 있다. 앞 목둘레는 둥글게 파여져 있으며, 정사선 방향으로 마름질하여 이어서 만든 둥근 깃이 달려 있고 앞에 자주색의 매듭단추가 달려 여미게 되어있다. 매듭단추는 흉배 하단에도 달렸던 흔적이 있어 11.5㎝ 간격으로 모두 5개를 달았던 것으로 추정된다. 뒷길이는 122㎝, 화장은 19㎝, 진동 31.5㎝, 품은 41.8㎝이다.

본 유물의 명칭은 다음과 같이 유추해 볼 수 있다. 첫째, 『문헌비고(文獻備考)』에 따르면 ‘오늘날의 전복은 옛날의 반비인데, 일명작자(綽子) 또는 답호라고 한다’라고 기록되어 있어 작자라고도 볼 수 있는데 작자에 흉배를 단 예는 보이지 않는다.

둘째, 중국 청대의 복식 중 괘(掛)와 같은 형식으로 생각해 볼 수 있다. 괘는 황제로부터 관원에 이르기까지 겨울에 조복(朝服), 용포(龍袍), 혹은 망포(蟒袍)의 위에 덧입는 예복으로 단탁이라고도 한다. 형태는 대금(對襟)이며, 목선이 둥글고 밑변으로 갈수록 넓은 사다리꼴 형이며 단추로 여미게 되어 있는 점에서 남이흥의 유물과 같은 형태이다. 괘중 길이가 긴 것은 장괘(長掛 혹은 大掛), 짧은 것은 마괘(馬掛)라 하는데 특히 흉배를 단 것은 보괘(補掛)라 한다. 장괘에서 소매가 생략된 형태로는 궁중의 황족과 내외명부 부녀들이 조복 위에 입던 조괘(朝掛)가 있고, 융복으로 착용했던 탁갑이 있다. 옷감은 보문단(寶紋緞)으로 서보, 쌍서각, 삼보문, 산호, 방승, 보, 전보, 여의문두 등이 보문단을 주제로 크고 간략하게 도안되었으며 문양의 일완전 크기는 경향이 32㎝, 위향이 14.5㎝로 대형의 무늬이다. 보문만을 주제로 한 대형의 문양은 드물게 사용되었는데, 중국에서는 명대 정릉(定陵)에서 출토된 직물에서 보이며, 단국대석주선기념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동래 정씨(東萊 鄭氏, 1600년 대)의 유물에서 확인된다.

앞뒤로 흉배가 있으며 흉배는 따로 만들어 붙인 것이 아니라 직접 길 바탕천 위에 자수(刺繡)하였다. 앞뒷길 흉부에 실 한 두 가닥을 방형으로 놓은 후 징거서 구획을 두르고 가운데 홍금선(紅金線)으로 4조룡(四爪龍)을 비늘모양에 따라 징거서 수놓았으며, 각색의 꼰사로 운문, 보문, 화문, 수파, 화염보주 등을 자수하였다. 홍금선은 홍색의 견사와 편금사를 함께 꼬아 만든 이합연사로 붉은 실과 금사가 반반씩 보여 외관상으로는 붉은색을 많이 띤다. 꼰사나 연금사 모두 꼬임의 방향은 좌연이다. 자수는 평수, 자련수, 이음수, 징금수 등의 기법이 쓰였다. 좌우 길을 맞추어 볼 때 흉배의 크기는 대략 가로 35.5㎝, 세로가 38.5㎝정도이다.

 
 
 
목록
이전글보기 이전글 | 호패  
다음글보기 다음글 | 녹피방령포